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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하는이야기

02 각오





“100번 까일 각오로 보내보려고."

퇴사를 하며 친구에게 한 말이다. 진심이었다. 10번은 몰라도 100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겠지 싶었다.
하지만 거절은 예상보다 더 혹독했다. 반려 메일을 받은 날은 반나절 정도 마음이 너덜너덜한 상태로 보내야 했다. 물론 반려 메일은 정중했다. 그래도 거절은 거절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100번 까일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계속 원고를 만들고 투고했다. 
그림도 글도 전공하지 않았고,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은 몰랐다. (데생과 수채화, 동시창작 수업을 들은 것은 조금 이후의 일이다) 지겹도록 거절당했지만, 가끔 첨삭지도 받듯 자세하고 좋은 충고도 들을 수 있었다. 원고를 좋게 봐 주는 출판사도 만났지만 쉽게 계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원고를 만들고 투고하고 수정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년쯤 되었을 때 첫 책이 나왔다. 계약된 원고도 생겼고, 계약을 위해 이야기가 진행 중인 원고도 생겼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돌이켜 보니 '100번 까일 각오'는 내게 의미 있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내게 몇 가지 교훈을 남겼다.

먼저 1개의 원고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적어도 4, 5개의 이야기가 모여야 작가의 스타일을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 작가의 스타일은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고가 거듭될수록 작가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어떤지, 이야기의 결은 어떤지, 성실한지…등이 다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원고가 거절당했다고 실망하지 말자.
 
다음으로 출판사 별로 성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서점에서 책을 훑어보거나, 홈페이지의 회사소개를 읽어보고 출간 목록을 확인해도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어딘가 출판방향이 맞는 곳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물론 내 원고가 자신에게 부끄러운 수준이 아니어야겠지만.

마지막으로 결국 원고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고가 나오기까지의 고민과 노력을 말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 한들 그게 출판사, 편집자와 무슨 상관인가. 원고가 잘 나오기 전에는 아무 의미 없는 일이다. 노력에 대한 인정은 가족과 연인에게 받거나 셀프로 받도록 하자.


오늘도 나는 100번 까일 각오로 새로운 원고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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