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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by day

아이의 처방전

한창 회사 업무로 바빴던 지난 6월의 일이다. 

교회 방송실에 앉아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데 예은이가(4세 여자아이) 방송실로 들어왔다.

예은이는 방송실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옆에 '땅이'라고 불리는 인형을 앉혀두고 의사선생님 놀이를 시작했다.

한참을 놀던 아이가 갑자기 나를 부른다.


"아쌤, 내가 진료해 줄게요. 앉아봐요"

"진료? 그래 알겠어, 대신 선생님이 준비할 게 있으니까 빨리 봐줘"


아이를 무안하게 하고 싶지 않아 순순히 진료를 받아들였다.

아이는 병원에서 본 게 있는지 맥도 잡고, 짐짓 고민하는 표정도 짓는다.


"아쌤, 요즘 좀 아프죠?"

"음.. 조금 피곤하긴 하네"

"그럼 내가 처방전 써 줄게요. 꼭 이대로 해야돼요"

"우와~ 처방전? 알겠어. 그럼 처방전 하나 써 줄래요?"


아이는 수첩에다 천천히 볼펜으로 뭔가를 써 내려가면서 나에게 처방전을 말해주었다.


"배가 아프면 회사 갔다가 돌아올 때 병원에 들러서 약을 받아서 씻고 치카치카하고 손도 씻고 약 먹으면 나아요
 그리고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엄마랑 놀이터에 가서 열심히 놀면 좋아지고 또 많이 뛰어야 돼요.
 저는 건강해서 많이 뛸 수 있어요"

"와~ 예은아 정말 고마워! 선생님이 이거 잘 기억하고 지킬게"


정말 따뜻하고 똑똑한 처방전이 아닌가!

나는 아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그 내용을 잊어버릴까 봐 수첩에 적어 두었다.


지금도 피곤한 날이면 더 깨끗하게 씻고, 잠깐이라도 걷거나 달리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효과가 있다.


[그림 1] 아이의 처방전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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