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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og

우유니, 배탈 그리고 밤하늘




울퉁불퉁한 고원 지대 위로 흙먼지를 날리며 덜컹덜컹 한 대의 Jeep가 달리고 있다. 
흙먼지 날리는 고원 지대 위로는 시릴 듯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고, 자동차에서는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저마다 풍경을 즐기느라 덜컹거림마저 즐거운 순간에 유독 한 사람... 나는 배를 움켜잡고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다. 그토록 기다렸던 우유니 투어를 하면서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것인가. 

이야기는 우유니 투어 둘째 날
 아침 식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가이드 부부가 준비해 준 파스타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들의 요리 솜씨는 아주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긴 붉은 호수 앞 테이블에 식탁보를 깔고 고지대의 푸른 하늘 아래 앉아서는 무엇을 먹어도 맛있게 느껴졌으리라. 
무튼, 그렇게 식사를 하던 중 나는 속이 메스꺼움을 느꼈다. 당시에는 호수에서 나는 묘한 냄새 때문이려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한순간도 덜컹거림이 멈추지 않는 길을 수 시간 달리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뱃속에서 더러운 용암이 끓어 오르는 듯한 부글거림이 느껴졌다.
그 순간부터 창 밖의 경치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차가 멈출 때마다 화장실에 가기 바빴다.

남미에서는 화장실을 돈 내고 써야 했기 때문에 늘 숙소에 가서 사용하곤 했는데, 아끼고 아끼던 잔돈을 여기서 탈탈 털어 쓰기 시작했다.
한번은 돈 내고 화장실을 쓰고 나왔는데, 차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신호가 와서 얼른 화장실로 쪼르르 달려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나 방금 돈 냈는데 그냥 쓰면 안되냐며  애원에 가까운 부탁을 한 적도 있었다. 
'뭐 이런 놈이 있느냐는 듯한' 찡그림과 측은지심이 교차하는 하는 인디오 아주머니의 그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무튼, 2박 3일 일정의 중간 지점에서부터 나는 진정되지 않는 배를 부여잡고, 생존을 위한 처절한 여정을 시작해야 했다.
차가 덜컹일 때마다 식은땀이 흘렀다. 
정말...그 순간만은 내가 국가대표라는 생각으로 힘을 주며 버텼다.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에서 온 사람들에게 한국인의 인상이 이상하게 남으면 안 되니까..


둘째 날 저녁 숙소에서 화장실을 20번은 간 것 같다. 
그렇게 들락날락하고도 밤에 잠을 자기가 무서웠다.
주기적으로 신호가 왔고, 행여나 다른 사람을 깨울까 봐 나는 아예 외투를 걸치고 건물 밖으로 나와야 했다.

아...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ㅠㅠ

하는 마음으로 시린 고산지대의 밤기운을 느끼며 배를 문질렀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았다.



아....


쏟아질 듯하다는 말.. 마치 우주에 서있는 것 같았다는 말로 표현이 가능할까?
구슬같이 큼직한 별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반짝였다.
아니, 반짝였다기 보단 꿀렁꿀렁 거렸던 것 같다.
몸이 차갑게 식어 덜덜 떨릴 때까지 멍하니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잠들기 싫을 만큼 멋진 밤하늘이었다.



 

내가 배가 아프지 않았다면, 그 밤에 숙소 밖으로 나왔을까?
사람들하고 놀다가 자기 바빴겠지...


사는 동안 예상하지 못했고, 원하지도 않았던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도 그런 일들을 경험하고, 그런 일들은 좋아할래야 좋아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나를 어디로 인도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혹시라도 우유니의 밤하늘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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