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건물 주차장 한켠에 호박 모종을 심었다.
화단은 아니고 그냥 흙무더기였던 것 같은데 신기하게 호박이 잘 자랐다.
주차장 벽을 따라 쑥쑥 자라는 모습에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다.
매일 물조리개로 물을 주고 얼마나 컸나 가늠해 보는 게 즐거웠다.
마법의 콩을 심은 제크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이제 곧 거대한 호박이 열릴 텐데 그것을 팔지
아니면 맛있는 호박죽을 해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던 어느 날…
학교에 간 사이 건물에 사는 어른들이 그 호박을 구석에 옮겨 심어버렸다.
마법의 콩나무 처럼 쑥쑥 자라던 호박은 힘을 잃고 시들시들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라 죽게 되었다.
애정을 담은 첫 식물 키우기는 허무하고 슬프게 끝났다.
그럼에도 호박이 쑥쑥 자라는 것을 볼 때의 즐거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생명을 보살피는 행위에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온유와 함께 식물을 보살피고 싶다.
매일 조금씩 관심을 주고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과정을 즐기고 싶다.
그 속에 열매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놀라움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은 식물 하나에서 놀라움을 발견하는 사람은
세상 모든 존재에게서 놀라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온유야,
우리 생명의 놀라움을 같이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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